악마가이사왔다, 우리 옆집에?

평범했던 우리 동네에 수상한 이웃이 이사왔습니다. 밤마다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 섬뜩한 눈빛. 혹시 우리 옆집에 이사 온 사람은… 정말 ‘악마’일까요? 일상 속 공포가 시작됩니다.

수상한 이웃의 첫인상

수상한 이웃의 첫인상

우리 아파트는 조용하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낡았지만 정갈하게 관리된 복도, 서로 마주치면 어색하게나마 목례를 나누는 이웃들. 저 역시 이곳의 평온함에 익숙해져 5년째 살고 있었죠. 바로 옆집, 704호가 비어있던 지난 3개월은 그 평온의 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깨졌습니다. 바로 ‘그’가 이사 오던 그날 밤부터 말이죠.

보통 이사는 시끄럽고 분주하기 마련입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의 우렁찬 목소리, 가구를 옮기는 쿵쿵거리는 소리, 바쁘게 오가는 발소리들. 하지만 704호의 이사는 달랐습니다. 한밤중, 자정을 갓 넘긴 시간에 시작된 그들의 움직임은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 보인 것은 흔한 탑차가 아닌, 로고 하나 없는 새까만 대형 트럭이었습니다. 트럭에서 내린 사람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짐을 날랐습니다. 이삿짐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흔한 가구나 가전제품 박스는 보이지 않았고, 대부분이 검은 천으로 덮인, 각지고 길쭉한 형태의 궤짝들이었죠. 이사 첫날부터 우리 집 복도엔 일상과는 거리가 먼,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

이웃의 첫인상은 ‘소리’로 먼저 다가왔습니다. 처음 며칠간 704호는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고요했습니다. 숨 막히는 정적. 저는 그저 새 이웃이 짐 정리에 시간이 걸리거나, 혹은 극도로 조용한 사람일 거라고 애써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산산조각 났습니다.

새벽 3시. 잠결에 뒤척이다가 처음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생활 소음이 아니었습니다. 일정한 톤으로 낮게 울리는 허밍(humming) 소리 같기도 했고, 낡은 라디오의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 나는 지직거림 같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아주 희미하게, 여러 사람이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겹쳐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불쾌한 파동을 담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소음이 아닌, 마치 다른 차원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소리였습니다. 층간소음으로 신고하기에도 애매한, 그저 ‘이상한 소리’. 혹시나 비슷한 불편을 겪는 이웃이 있을까 싶어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리는 일반적인 층간소음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 있었습니다. 소리는 불규칙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관리사무소에 문의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옆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귀신이 속삭이는 것 같아요”라고 말할 용기는 차마 없었습니다.

마주침, 그리고 남겨진 의문점들

그렇게 소리의 정체에 대한 의심만 키워가던 어느 날, 드디어 704호의 주인을 마주쳤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였습니다. 문이 열리고, 안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칠흑같이 검고 단정한, 하지만 어딘가 현대적인 디자인과는 거리가 먼 정장을 입고 있었죠. 185cm는 족히 넘어 보이는 큰 키에 마른 체격, 그리고 유난히 하얀 피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705호에 사는 사람입니다.”

제가 먼저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넸지만, 그는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시선은 마주치지 않았죠. 엘리베이터의 조명 아래 잠시 스친 그의 얼굴은 감정이라고는 전혀 읽을 수 없는 무표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뇌리에 깊게 박힌 것은 그의 눈이었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검은 눈동자 속에서 기이한 붉은빛이 스치는 것을 본 것 같았습니다. 착각이었을까요? 그는 1층에 내릴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가 내린 뒤 엘리베이터 안에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서늘한 향, 마치 비 온 뒤의 흙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인 듯한 향취가 남아있었습니다. 그 짧은 만남 이후, 제 머릿속에는 그에 대한 몇 가지 수상한 특징들이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 칠흑 같은 어둠, 그의 시그니처 스타일
    그를 마주칠 때마다 그는 항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습니다. 단순히 검은색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마치 빛을 흡수하는 암흑 그 자체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동네 편의점을 갈 때조차 흐트러짐 없는 검은 셔츠와 바지 차림이라니, 평범한 이웃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멉니다.
  • 한밤중에 찾아오는 기묘한 방문객들
    가끔 늦은 밤, 복도 CCTV를 통해 그의 집을 찾는 방문객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 역시 하나같이 낡고 고풍스러운 정장 차림이거나, 현대의 것이라고는 보기 힘든 망토 같은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더욱 이상한 점은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치 연기처럼 복도에 나타나 704호의 문으로 사라집니다.
  • 생명력을 거부하는 그의 주변
    가장 소름 돋는 부분입니다. 제가 복도에 내놓고 키우던 작은 아이비 화분이 704호 문 근처에 있던 것만 유독 까맣게 말라 죽었습니다. 저희 집 고양이는 704호 현관문 근처로는 절대 다가가지 않고, 그쪽을 향해 온몸의 털을 세우고 하악질을 하곤 합니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그곳의 모든 생명력을 앗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 예민함이 만들어낸 과대망상일까요? 아니면 정말로, 제 평범했던 일상 바로 옆 칸에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존재가 이사 온 것일까요? 아직은 그 어떤 것도 단정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우리 옆집에 이사 온 존재는 ‘평범한 이웃’이 아니라는 것을요. 이제 저는 단순한 이웃을 넘어, 그의 정체를 파헤쳐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그의 흔적을 쫓는 저의 첫 번째 시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밤마다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

밤마다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

새로운 동네, 새로운 집.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낮에는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가득 채우고, 주말이면 동네 공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평화롭게만 느껴졌죠. 하지만 그 평화는 언제나 해가 지면 잔인하게 깨지곤 했습니다. 바로 옆집, 그 ‘악마’가 이사 온 후부터 말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평범한 층간 소음이겠거니, 혹은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겠거니 하고 넘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단순한 생활 소음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쿵, 쿵, 쿵…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벽을 타고 울려 퍼집니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를 바닥에 내리찍는 듯한 소리. 뒤이어 들려오는 건 ‘끼이익-‘ 하고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바닥을 긁는 소리입니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뼈 속까지 시큰하게 만드는 불쾌한 마찰음이었죠. 이 소리들은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시작되어 새벽녘이 되어서야 잦아들곤 했습니다. 그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는 날이 늘어갔고, 제 신경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예민해졌습니다.

혹시 나만의 착각일까? 소음의 과학적 원인들

물론, 저도 처음부터 옆집 사람을 악마로 단정 지었던 것은 아닙니다. 혹시나 건물이 오래되어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소음은 아닐까,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은 아닐까 싶어 밤새 인터넷을 뒤지며 가능한 원인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원인의 소음이 존재하더군요.

  • 수격 현상 (Water Hammer)
    수도꼭지를 갑자기 잠그거나 열 때, 배관 내의 물이 관성에 의해 배관 벽에 부딪히면서 ‘쿵!’ 하는 소음을 내는 현상입니다. 특히 오래된 아파트나 빌라에서 자주 발생하며, 물을 많이 사용하는 심야 시간대에 더 뚜렷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옆집의 소리는 물이 흐르는 소리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였습니다.
  • 구조체 소음 (Building Creaks)
    콘크리트나 철골 구조물은 낮과 밤의 온도 차이로 인해 미세하게 수축과 팽창을 반복합니다. 이 과정에서 ‘뚝’, ‘딱’ 하는 소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마치 집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금속이나 콘크리트가 내는 소리라기엔 너무나도 유기적이고, 기괴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가전제품 및 가구 소음
    오래된 냉장고의 컴프레서가 돌아가는 소리나, 낡은 침대 프레임이 삐걱거리는 소리 역시 밤에는 유독 크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밤, 그렇게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한 패턴으로, 바닥을 긁고 무언가를 내리찍는 소리를 내는 가전제품이 과연 존재할까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처럼 몇 가지 합리적인 의심들을 해보았지만, 그 어떤 가설도 옆집의 소리를 완벽하게 설명해주지는 못했습니다. 점점 또렷해지는 소리의 정체는 저의 이성적인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일상적인 소음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혹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우선 객관적인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소리의 패턴

단순히 소리가 크고 불쾌하다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저를 가장 괴롭게 만든 것은 소리의 ‘패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의미 없는 소음의 나열처럼 들렸지만, 며칠 밤을 새워가며 귀를 기울인 결과, 저는 그 소리 안에 섬뜩한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둔탁하게 무언가를 내리찍는 소리가 세 번 울리면, 어김없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뒤따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아주 희미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는 듯한 속삭임이 들려왔습니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말이죠.

그 속삭임은 분노에 찬 외침도, 고통스러운 비명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극히 차분하고 낮은 톤의, 무언가를 암송하는 듯한 목소리였습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심장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과연 벽 너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낮에 마주쳤던, 그저 평범하고 조금은 무뚝뚝해 보였던 옆집 남자의 얼굴 뒤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요? 밤의 고요함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미지의 공포가 스며드는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단순히 소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넘어, 제 생존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악마의 증거를 찾아서

악마의 증거를 찾아서

옆집에 이사 온 그 사람은 정말 ‘악마’일까요? 물론 뿔이나 꼬리가 달린 고전적인 형상은 아닐 겁니다. 21세기의 악마는 아마도 가장 평범하고, 심지어 매력적인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돋보기를 들고 수상한 발자국을 찾는 탐정처럼, 현대 사회 곳곳에 숨겨진 악마의 흔적, 즉 교묘한 악의와 파괴적인 영향력의 증거를 추적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 여정은 옆집을 염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쩌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과정이 될지도 모릅니다.

디지털 시대의 그림자: 데이터 속 악마

오늘날 악마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영역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익명성과 무한한 전파력을 가진 디지털 세상일 겁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드와 알고리즘 뒤에 숨어, 악마는 그 어느 때보다 교묘하게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조종하고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우리는 그저 스마트폰을 스크롤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악마의 속삭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 조작된 정보와 가짜 뉴스
    과거의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기 위해 달콤한 말을 건넸다면, 현대의 악마는 ‘진실’처럼 보이는 거짓 정보를 퍼뜨립니다.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자극적인 뉴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음모론, 교묘하게 편집된 사진과 영상들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타고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갑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서로를 불신하며,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이 혼란과 분열이야말로 악마가 가장 바라는 결과물일 겁니다.
  • 알고리즘의 유혹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추천하며 우리를 플랫폼에 더 오래 머물게 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우리의 생각은 점점 더 편협해지고 극단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나와 비슷한 의견만 계속 접하다 보면 다른 생각은 틀린 것이라 확신하게 되고, 어느새 현실과 동떨어진 ‘확증 편향’의 동굴에 갇히게 됩니다. 이것은 악마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자신이 만든 세계에 우리를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 사이버 불링과 익명의 폭력성
    악마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은 아마도 순수한 악의와 폭력성일 것입니다.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한 개인에게 무차별적인 언어폭력을 가하는 사이버 불링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실에서는 상상도 못 할 잔인한 말들이 모니터 뒤에서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이 행위는, 명백히 악마가 남긴 지울 수 없는 증거입니다.

일상에 스며든 교묘한 속삭임

악마의 증거는 거대한 디지털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찾기 힘들고 치명적인 증거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관계, 바로 일상 속에 숨어있습니다. 그 증거는 물리적인 상처가 아닌, 서서히 영혼을 갉아먹는 심리적 조종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현대의 악마는 뿔과 꼬리 대신 교묘한 말과 미묘한 행동으로 우리의 정신을 좀먹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가스라이팅’이라고 부릅니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그런 적 없는데?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겠지” 와 같은 말들은 끊임없이 상대방의 현실 감각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결국 피해자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되고, 가해자에게 완전히 종속됩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욱 악랄한, 영혼을 향한 공격입니다.

증거, 그리고 우리의 선택

지금까지 우리는 디지털 세상과 일상 관계 속에서 악마가 남긴 여러 증거를 살펴보았습니다. 조작된 정보, 알고리즘의 덫, 익명의 폭력, 그리고 심리적 지배까지. 이 모든 증거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명확한 ‘물증’이 아니라, 관계와 현상 속에서 발견되는 ‘정황 증거’라는 점입니다. 누군가 “이것이 바로 악마다!”라고 명확히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증거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결국 우리 각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악마의 증거를 찾는 일은 단순히 대상을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사회와 내면의 건강성을 진단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결국 ‘악마의 증거’를 찾는 여정은 외부의 적을 색출하는 과정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판단력과 양심을 시험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옆집 사람이 악마인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악마의 가장 큰 힘은 우리가 그 존재를 외면하고 방관할 때 생겨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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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정체, 그리고 나의 선택

그의 정체, 그리고 나의 선택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순간이 있다.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일제히 제자리를 찾아가며 거대한 그림을 완성하는, 그런 섬뜩한 희열의 순간. 지난 몇 주간 내 머릿속을 떠돌던 의심과 불안, 기묘한 위화감의 파편들이 마침내 하나의 형체를 갖추었다. 바로 내 옆집에 사는, 언제나 완벽한 미소와 젠틀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 남자. 그의 정체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아니, 상상조차 거부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는 ‘악마’였다.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은 거창한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지옥의 불길이 솟아오르거나 하늘이 갈라지는 따위의 극적인 장면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도 현대적이고, 지독히도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나는 진실을 마주했다. 그의 집 앞에 잠시 정차된 고급 세단에서 내린 한 남자가 절규하며 외치는 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내 영혼을 담보로 한 투자가 이렇게 휴지 조각이 될 순 없어!” 영혼, 투자, 담보. 일상적인 대화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인 단어들의 조합. 그 순간, 그의 서재에서 언뜻 보았던 기묘한 상징이 새겨진 계약서들과 그의 손님들이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표정이 극명하게 달랐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쳤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균열의 증거들

돌이켜보면 신호는 꾸준히 있었다. 내가 애써 외면했을 뿐. 그가 악마라는 심증을 굳히게 한 결정적인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 초현실적인 스타트업, ‘Ego & Echo’
    그는 자신을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로 끌어내는 컨설팅 스타트업’의 대표라고 소개했다. 회사명은 ‘에고 앤 에코’. 자아와 메아리라니, 그럴싸하지 않은가. 하지만 기업 정보 사이트 어디에도 그의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암호화된 P2P 네트워크상에서 ‘소원 성취’, ‘능력 증폭’ 등의 키워드로 검색되는 기묘한 플랫폼의 운영자가 바로 그였다. 계약 조건은 언제나 ‘가장 소중한 것의 일부’. 최근 이 플랫폼을 통해 막대한 부를 얻은 한 인플루언서가 원인 모를 공허감에 시달리다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 시간을 거스르는 물리법칙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단지 전체가 정전된 적이 있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하나 돌리지 못해 모두가 찜통더위에 시달릴 때, 그의 집 창문만은 서늘한 김이 서려 있었다. 전력 공급 없이 어떻게 냉방이 가능한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가꾸는 정원의 장미는 시드는 법이 없었고, 그의 차는 세차 한 번 하지 않아도 늘 먼지 하나 없이 반짝였다. 사소하지만, 물리법칙을 명백히 거스르는 현상들이 그의 주변에 늘 존재했다.
  • 데이터로 구현된 유혹
    가장 소름 끼치는 부분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건넨 차 한잔. “요즘 커리어 때문에 고민이 많아 보이셔서요. 아카시아 꿀을 넣은 캐모마일 티인데, 마음이 편안해지실 겁니다.” 나는 내 고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다. 단지, 관련 키워드로 검색을 몇 번 하고, 익명의 커뮤니티에 푸념 글을 올렸을 뿐이다. 그는 마치 내 모든 온라인 활동 기록을 열람한 것처럼 정확하게 나의 약한 부분을 짚어냈다. 그가 사용하는 유혹의 방식은 더 이상 선악과가 아닌, 빅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제안이었던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 서다

진실을 마주한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이사를 갈까? 하지만 이 도시, 아니 이 세상 어디를 간들 그와 같은 존재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경찰에 신고?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끔찍한 진실을 가슴에 묻고 매일같이 옆집 악마와 웃으며 인사를 나눠야 하는 걸까.

그는 단순한 악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는 현대인의 가장 깊은 욕망과 불안을 먹고 자라는 존재였다. 성공에 대한 갈망,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뒤처지고 싶지 않은 불안감. 그가 내미는 계약서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매일같이 사회와 맺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계약의 연장선일지도 모른다. 더 많은 성공을 위해 나의 시간을, 건강을, 인간관계를 기꺼이 ‘투자’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그의 ‘영혼 담보 투자’는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른가.

결국 나의 선택은 그를 상대할 것인가, 혹은 나 자신을 외면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그의 존재를 모른 척하는 것은, 내 안의 욕망과 불안 역시 외면하는 것과 같다. 그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내 삶의 주도권을 완전히 넘겨주는 행위다.

새로운 관계의 정립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도망치지도, 맞서 싸우지도, 그렇다고 굴복하지도 않겠다. 대신, 나는 그를 ‘관찰’하기로 했다. 그는 인간을 유혹하는 존재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 패턴 속에는 분명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의 유혹 방식을 분석하고, 그가 노리는 인간의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한다면, 역설적으로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이제부터 그는 나의 위험한 이웃이자, 가장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나는 그의 계약서에 사인하는 대신, 그와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기록하는 관찰 일지를 써 내려가려 한다. 이것은 악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악마가 옆집에 사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평범한 인간의 생존 기록이다. 나의 선택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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